무명을 통한 진리의 선택과 자율성의 완성! 이것이 바로 무명이 나타난 의미로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삶의 본질적 모습인 것이다.
무명이 무지의 근본인 것이지 우주의 근본이 아니다. 그런데 왜 태초에 무명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묻는가?
무명이란 사실과 이치를 바로 알지 못하는 어둠을 말한다. 사실과 이치를 모르고 헛되고 맞지 않는 일을 하니 되는 일이 없고 가난과 불행이 따르는 것이다.
부처님은 무지가 어둠과 불행의 원인이라 했을 뿐이다. 그런데 관념에 젖은 힌두교에서 무명이 세상의 원인이라고 한 것이 동양사회에 뿌리내려 사람들의 정신을 병들이고 있는 것이다.
말법에서는 이 세상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착각에 의해 생겨난 무명이 이 우주를 있는 것처럼 착각시키고 있다고 한다. 세상을 이렇게 존재하지 않아야 할 허망한 것으로 보니 삶이 고해이며 이 세상이 모두 혐오스럽고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동양사회는 서구와의 경쟁에서 밀려나 핍박받는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세상이 무명에 의해 무의미하게 생겨난 것이라면 완전한 이치에 의해 돌아가는 완벽한 법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은 완전한 뜻에 의해 생겨난 질서정연한 조화체로서 정해진 이치에 따라 끝없이 완전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완전한 세상은 전지전능한 절대적 존재를 원인으로 한다. 그래서 세상은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이며 삶이란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전지전능하고 완전한 조물주는 왜 맑고 고요한 상태로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이 세상을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이 우주가 본래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며 순환한다.
그래서 조물주도 정지된 완전성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완전성이기 때문에 고요히 정지되어 죽지 아니하고 끝없는 자유성과 창조성으로 세상을 만들고 다시 순환시키는 것이다.
만약 우주의 근원이 자율성과 창조성이 없이 항상 고요하고 깨끗하여 적멸에만 머문다면 이 우주는 고요하고 정지된 상태로 유지되어 존재하는 것도 없고 인식하는 것도 인식되는 것도 없으며 어떠한 의미나 가치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한 정지상태의 완성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가운데 완전한 이치를 나타내고 완전한 존재를 만들어 내고 있을 때 가장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완전성이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존재방식인 것이다.
즉 신성(불성)은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완전한 이법에 따라 완전한 결과를 나타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완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완전한 뜻 속에서 영원히 순환한다. 어느 시점에 태초의 원인이 있었고 또 어느 시점에는 기운이 가득 차 있었을 것이며 어느 때는 모든 것이 가득 생겨나 있었을 것이며 어느 때는 모든 것이 대폭발을 일으켜 온통 혼동 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끝없는 순환을 통해 영원히 도니 어디가 처음인지 끝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그러니 시작이라는 구분을 두어 논리의 기초로 삼고 싶다면 돌고도는 우주의 흐름을 끊어서 생명이 처음 시작되는 시기에서부터 생각하기 바란다.
어느 순간 이 우주에는 완전한 뜻과 기운이 가득 찬다.
이러한 기운들은 힘을 가지고 운동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운들이 수억겁을 끝없이 서로 스치고 부딪히면 정화되고 정화된 기운들 중에 생명력을 띤 진기가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현대과학이 알지 못하는 살아있는 우주의 생명력이다.
기존 과학의 논리에 의하면 물질에서는 절대 생명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우주에는 이미 생명이 생겨나 있다. 즉 이 우주 속에는 이미 생명의 씨앗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즉 이 우주는 때와 환경이 맞으면 언제나 그곳에는 생명이 나타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우주는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지구 또한 자신을 보존하는 생명체의 일종이며 대기권, 열층 등 자기를 보호하는 막을 구성하고 있어 자신에게 해로운 것이 들어오면 태워버리며 혜성 같은 것이 들어오면 반탄력을 일으켜 피해간다.
로케트는 이러한 지구의 보호하려는 뜻과 이치를 넘어서는 원인을 지음으로써 지구의 대기권을 관통하여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이 우주에는 인간의 뜻을 넘어 너무나 완전한 뜻과 질서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기는 더욱 영묘하게 진화하여 그곳에 의식이 나타난다. 인간의 영혼 또한 기운에 의식이 붙어있는 것이니 자연에서 저절로 생겨난 진기와 근본적인 구조에 있어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기운이 자연에 붙어 적절한 환경을 만나면 환경을 바탕으로 여러 기운을 흡수하여 생명체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이 생겨나는 절차이며 이치이다.
이렇게 생명이 생겨나면 식물에서부터 고등동물로 진화하고 고등동물은 인간으로 진화하여 의식을 발전시킨다. 이때 의식 속에 지어지는 뜻에 의해 생겨나는 생명체의 모습과 습이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기운이 변해서 된 진기는 단순한 생명력을 띤 기운이니 그 의식이 매우 약하다. 그래서 식물이나 미물의 근본이 된다.
그러나 이 의식이 더욱 정화되어 맑아지게 되면 동물을 거쳐 마침내 인간의 의식으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나타나 비로소 온전한 형태의 의식을 가지게 되는데 이 인간의 의식 또한 청탁이 있다. 인간의 의식이 60% 정도의 순도를 지니고 있다면 해탈한 자의 의식은 거의 99%에 가까운 순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 속에 있는 지난 전생의 생명으로서의 업과 무명을 지워버리고 진실하고 맑은 의식을 발전시켜 완전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완성을 해탈이라 한다.
무명이란 인간의 의식이 처음 생겨나 미미한 관계로 사실과 이치에 대해 매우 어둡다.
이것이 바로 모든 무지와 불행의 원인인 무명인 것이다. 그래서 부딪히고 깨어지면서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고 이치에 벗어났음을 깨닫고 사실과 이치에 밝아지게 되는데 이것을 밝음 즉 명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근과 좋은 인연이 있는 자는 밝음을 키워 완성에 이르고 선근이 약하고 나쁜 인연을 만나는 자는 더욱 무지해져 파멸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명이 나타나 인간을 완성으로 이끌어나가는 지은 대로 받는 법인 것이다.
그러면 인류역사가 인간 스스로 택한 무명으로 말미암아 항상 고통에 아파해 왔고 그 결과로 인하여 오늘날 인류가 소멸할 위험에 직면해 있는데, 이와 같은 결과가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인간의 마음속에 무명을 심어 놓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조물주의 분신으로 그와 마찬가지로 자율성과 창조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생명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의식을 띠지 않는 식물의 단계에서는 자연의 하나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무명이 개입될 여지가 없지만
자율성이 강해지는 인간의 단계에서는 신과 같은 형태의 자유성과 창조성을 보이면서 자연의 흐름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행동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 인간은 신과 같은 완전함에 이르고자 끝없이 노력하게 되는데, 완전성에 이르는 순간까지 인간은 매우 불완전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행하는 많은 행위가 올바른 이치에서 벗어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갖게 되고 이를 일러 무명으로 인해 어둠을 범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수동적 미 성숙성을 벗어나 능동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진실 - 세상이 진리로 되어 있고 이치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간은 완성에 이르기 위해 살아가는 신성의 현현이라는 사실- 을 모르고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불행을 자초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바로 무명의 진정한 실체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신성(불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이와 같이 무명으로 인하여 이치에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 마음은 어둠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본성적으로 깨달아 더욱 완전한 자율성과 창조성을 습득해 나간다.
그래서 행동과 반성이라는 자율적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은 점차 완성된 차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는 각자가 지은 바에 따라 완전한 결과를 받는 하늘의 뜻과 법칙이 작용하고 있어서 각자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행위에 따라 그에 상응한 댓가를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잘못된 줄 알면서도 욕망에 끌려 계속 무명에 집착하게 되면 삶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져 소멸하는 운명을 갖게 되고, 무명을 반성하여 바른 이치에 따른 밝은 삶을 실천하게 되면 더욱 완전한 지혜와 자유를 얻어 인간완성(신성, 불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명을 엄청난 악의 근원이며 악마의 화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무명이란 하늘의 뜻으로 나타난 신의 품성인 자유성으로 말미암아 완성에 이르는 과정에서 짓게되는 오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악의 원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자신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른 것이 어찌 악이겠는가? 그러므로 잘못을 저지르면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깨우침을 얻는 것이 인간의 길인 것이다. 그러면 정신이 더욱 밝아지고 완성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 우주 속에는 오직 완전한 신성과 진리만이 존재할 뿐 그에 필적할 만한 악이란 없으며 이 세상의 어둠과 불행이란 인간 스스로 지은 잘못이 하늘이 정해놓은 이법에 의해 스스로 파멸하는 과정인 것이 다.
따라서 무명은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태어난 보람을 살려 세상을 축복하면서 자신의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할 필요가 있다.
삶이란 행동하는 과정 속에 있으며 실천을 통해 그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이니 잘못이 있으면 이를 반성하면 그 영혼이 더욱 크고 밝게 영그는 것이다.
이러한 엄연한 인과의 이치를 무시하고 무명을 가벼이 여겨 탐욕과 이기심으로 어둠의 길에 계속 집착하면 그 불행의 고리가 이어져 자신을 파멸시키고 어둠이 온 세상을 덮게되어 오늘날과 같이 전 인류가 파국에 이르는 불행을 맞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러한 완전한 이치속에 살아가고 있는 귀한 존재인 만큼 인간에게 주어진 두가지 길, 즉 무명에 의한 파멸의 길과 진리에 의한 완성의 길 중 두말할 것도 없이 밝음(明)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무명이야말로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이며 신의 완전성을 지향해 나가는 생명의 모티브인 것이다.
무명을 통한 진리의 선택과 자율성의 완성! 이것이 바로 무명이 나타난 의미로서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이며 삶의 본질적 모습인 것이다.
--[질문]--
쓰신 글을 많이 읽어 보았는데 전 아직도 무명이 태초에 어떻게 생겨나는지와 우리 자신의 영혼은 최초로 언제 생성되는지 윤회하는 영혼도 맨 처음 생겨 날때가 있을텐데 그때가 언제 인지가 궁금합니다.
인과율의 법칙이 있더라도 최초의 인의 생성 기는 있지 아니한가요?
- 진실의 근원(ginc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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